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님이 임란 후 기거하시면서
국보로 지정된 징비록을 서술하신 곳입니다.
지은지 약 430여년정도 되며
하회마을 건너 부용대 오른 기슭에 위치한 풍광이 아주 수려한 고택입니다.

<부용대 올라가는 길에서 본 옥연정사 전경/ 앞쪽부터 세심재, 원락재, 완(적)심재
뒤로는 부용대, 앞쪽으론 낙동강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답니다>

<4칸방 2개로 이루어진 세심재와 중간에 위치한 마루 감록헌>

<다실로 꾸며진 감록헌>

<원락재/서애 류성룡 선생님께서 국보 132호인 징비록을 서술하신 곳>

<류성룡선생님이 생전에 심어놓으신 400여년이 넘은 소나무. 보호수로 지정>

<담장 아래로 전시되어신 야생화 분화들>

<간죽문/부용대와 나루터로 나가는 문/ 원락재와 함께 영화 스캔들 촬영장소였습니다>

<간죽문 바깥에서 바라다본 낙동강과 하회마을 천연기념물 만송정>

<간죽문 바깥에 있는 잔디밭 쉼터>

<문화재로 지정되었음 알려주는 표지석>

<간죽문에서 바라다 본 옥연정사>

<중간문에서 바라다 본 세심재와 원락재제>

<깔끔하게 수리가 된 욕실>

서애 류성용 선생께서 45세때 쓰신 옥연서당기가 명문장인데도 한문으로 쓰여진터라
아무나 보들못하니 안타까움에 부족하나마 제가 나서 번역을 해올립니다.
하회문화 지킴이 草 牧 柳 永 一
玉淵書堂記 (オックヨンソダングギ)
余旣作遠志精舍, 나는 이미 원지정사를 지어 놓았으나, (私はもう遠志精舍を作っておいたが,)猶恨基村墟近, 未燁幽期,마을이 멀지 않아, 그윽한 맛을 누리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村が遠くなくて, 床しい味を享受するには満足ではない惜しさがあった.) 渡北潭, 於石崖東, 이에 북쪽으로 沼를 건너, 돌벼랑 동쪽으로,(ここに北に 沼を向こう, ドルビョと東に, 得異處焉,기이한 터를 잡았는데,(奇妙なはずを取ったが,) 前읍湖光, 앞으로는 호수의풍광을 지녔고,(これからはホスウィプンググァンを持ったし,) 後負高阜, 뒤로는 높다란 언덕에 기대었으며,( 後ではノブダと言う(のは)丘によったし,) 丹壁峙其右, 오른쪽에는 붉은 벼랑이 치솟고,(右側には赤い崖が聳えて,) 白沙榮其左, 왼쪽으로는 흰모래가 띠를 두른듯 했다 (左側ではフィンモレが帯をかけたようだった)
南望,則群峯錯立 남쪽으로 바라보면, 뭇 봉우리들이 들쑥날쑥 섞여 서서, (南の方をブァラボなら, 多くの峰たちがドルスックナルスックじて立って),拱읍如畵, 마치 두 손을 맞잡고, 읍하는 형상이한폭의 그림이요. (まるで両手を取り合って, 邑する形象が山腹対です.) 漁村數鮎, 어촌 두어 집이,(漁村二つ程の集が)隱映烟樹間. 나무숲 사이 강물에 어리어 아른 거린다.(林の間川水に幼くてちらちらする.) 花山自北而南, 화산은 북쪽에서 달려오다가 남쪽의.(花山は北から駆けて来ている途中南側の)隔江相對, 강을 대하고 멈추어 섰다.(川を対して止めて立った)每月出東峯, 달이 동쪽의 산 봉우리에서 떠 오를 때,(月が東の住んだ峰で浮び上がる時,)
寒影倒垂,차가운 산그림자는,(冷たい山影は,) 半浸湖水, 반쯤
거꾸로 호수에 드리워지는데,(半ば逆に湖に垂れ下げるのに, ) 纖波不起, 물결 한점 일지않는 잔잔한 강물에,(波一点おこらない穏かな川水に, ) 金壁相涵, 금빛 달 그림자까지 담겨진듯한,(金色月影まで盛られたような,) 殊可玩也. 관경이야 말로 매우 볼만한 것이었다.(グァンギョングは言葉で非常に見物なのだった.)地去人烟, 不甚遠, 이 곳이 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나,(こちらが人家とあまり遠く離れなかったが, ) 而前阻深潭, 앞에 깊은 沼가 있어, (前に深い 沼があって, )人欲至者, 사람이 오고자 해도, (人が来ようとしても,)非舟莫通,배가 없으면 올 수가 없다.(お腹がなければ来ることができない.)
舟艤北岸, 그래서 배를 북쪽 기슭에 메어 두면,(それでお腹を北岸に担いでメオドンダなら,) 則客來坐沙中, 사람들이 와서 모래 사장에 앉아,(人々が来て砂社長に座って,) 招呼無應者, 이쪽을 향해 소리쳐 부르다가 오래도록 대답이 없으면,(こちらを向けて叫んで呼んでから長い間返事がなければ,) 良久乃去, 스스로 돌아가곤 하였으니,(自ら帰ったりしたから,) 亦遁世幽루之一助也. 이 또한 세상을 피해 그윽히 들어앉아 사는 일에 한가지 도움이 된다. (これも世の中を避けてグウックヒ納まって暮す事に一つ役に立つ.)於是, 余心樂之,나는 이것을, 마음 속으로 좋아하여,(私はこれを, 心の中に好きで,) 欲作小宇,조그마한 집을 지어서,(やや小い家を建てて,) 爲靜居終老之所. 늙도록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삼고자 하였으나,(老けるように静かに住む所にしようとしたが, ) 願家貧無計, 살피건데 집이 가난하여 도무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察するが家が貧しくてまったく計画を立て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有山僧誕弘者, 마침 산승탄홍이란 자가,(ちょうどサンスングタンホングと言う(のは)者,) 自薦幹其役,그 건축을 주관하고,(その建築を主観して,) 資以粟帛, 곡식과 베를내어 놓으니,(穀食とベルルネオおいたら,) 自丙子始, 越十年丙戌租成, 일을 시작한 병자년(선조 9년 1576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병술년(선조 19년 1586년)에,(仕事を始めた病者年(先祖 9年 1576年)から, 10年が去る兵術年(先祖 19年 1586年)に,) 可루息. 겨우깃들고 쉴만하게 되었다. (ギョウギッドルで休むに値するようになった.)
其制, 爲堂者二間, 집 구조는 당2칸은 (家構造は党2間は)名曰瞰綠, 감록헌이라 부르고,(ガムロックホンと呼んで,) 取王羲之'仰眺碧天際, 俯瞰綠水외'之語也.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 물구비 바라보네" 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고.(ワングフィジの "仰ぎ青い空を眺めて下では青いムルグビ眺めるのね" という詩語から取ったので.) 堂之東,爲燕居之室二間, 名曰洗心,이 당에 붙어 있는 편히 쉴 수 있는 방 2칸 이름을, (が党に付いている楽に休むことができる部屋 2間名前を,)洗心齋라 지었으니,(洗心斎 だと建てたから,) 取易繫辭中語, 주역계사편중 (朱易繋辞偏重)意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ここに愛情を抱いて万が一でも成すように願う.”は意味を込めている.)又齋在北 者三間, 또 북쪽 집 3칸은,(また北家 3間は,)以舍守僧, 取禪家說, 名曰玩寂, 이 집을 지키는 중을 위해, 선가의 말을 따서,((引っ越し守僧ツィソンがソルミョングワルワンゾック) この家を守る中のために, 禪家の言葉を取って, ) 玩寂齋라 하였다.(玩寂斎 だと言った.) 東爲齋 二間,동향집 2칸은,(東嚮家 2間は,)以待朋友之來訪者,名遠樂,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遠樂齋라 하였는데,(友達の来訪を待つという意味で, 遠楽斎 だと言ったが,) 取'自遠樂乎'之語.이 명칭은 論語중의 이른바 먼 곳으로부터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이 自遠方來하니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아, 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다. (この名称は 論語中のいわゆる遠いゴッウロブトボッが尋ねて来たらまた楽しくないか?, 有朋が 自遠方来したら不亦楽乎(ユブング, ザワンバングレ, ブルヨックラックホ)あ, という意味から取ったのだ.)由齋西出爲小軒二間,이재의 서쪽으로낸 조그마한 마루 2칸은(異才のソチォックウロネンやや小い床 2間は)與洗心齋相比, 名曰愛吾세심재와 이웃하고 있기에, 愛吾軒이라 하였다.(細心齋と隣合っているから, 愛吾軒(エオホン)といった.)取淵明'吾亦愛吾廬'之語 이 명칭은陶淵明의 시에 '吾亦愛吾廬' '나 또한 내 오두막 집을 사랑하노라'한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細心齋と隣合っているから, 愛吾軒(エオホン)といった.取淵明'吾亦愛吾廬'之語, この名称は陶淵明(陶然人)の時に '吾亦愛吾廬'(オヨックエオリョ), 'やまた私の小屋家を愛する'一詩語から取ったのだ.)合而扁之,曰玉淵書堂 이 모두를 합하여 편액하기를, 玉淵書堂이라 하였다.(この皆を合わせて扁額するのを, 玉淵書堂(オックヨンソだ)といった.)盖江水至此 匯爲深潭, 대개 강물이 흐르다가 이 곳에 이르러서는, 깊은 沼가 되었고, (たいてい川水が流れている途中こちらに至っては, 深い 沼になったし,)其色潔淨,그 물빛이 깨끗하고 맑아, 如玉故名.옥과 같은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そのムルビッがきれいで清くて,玉のようなわけに呼んだのだ.) 人苟體其意, 사람이 진실로 그 뜻을 본 받고자 한다면,則玉之潔, 淵之澄,옥의 깨끗함과, 沼의 맑음이란,(人が真実でその意味を模範としようとしたら, 玉のきれいさと, 沼の晴れと言う(のは),)皆君子之所貴乎道者也. 이 모두가 군자가 귀하게 여길 道인 것이다.(この皆が君子が珍しく思う 道であるのだ.)余嘗觀古人之言曰내가 일찍이 옛 사람의 말을 살펴보건데,(私がかつて昔の人の言葉をよく見るが,")"人生貴適意,"인생이란 스스로 뜻에 맞는 것이 귀한 것이지,("人生と言う(のは)自ら意味に当たることが珍しいことであって,) 富貴何爲," 부귀가 무슨 귀한 것이 되리요 하였거니와," (" 富貴が何か珍しいのがなろうぞするけれども,")余以鄙拙, 내가 옹졸하고 부족하여서,(私がせせこましくて不足で,)素無行世之願, 평소 행세하기를 원치 않았으나,(普段行世するのを願わなかったが,) 譬如미鹿之性, 사슴, 고라니 같은내 천성은, (鹿,赤鹿ガッウンネ天性は,)山野其適, 非城市間物, 산야에 삶이 알맞지,시정간에 살 사람이 아니었다.(山野に生が適当なの,是正間に肉人ではなかった.) 而中年妄出宦途, 중년에 망령되게도벼슬길에 나가,(中年にマングリョングドエゲドビョスルギルに出て,) 汨沒聲利地場, 二十餘年矣. 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마당에서 골몰하기를 20여년이 되었다. (名誉と利欲を争う庭先で沒頭するのを 20余年になった.)擧足搖手,손발 움직일 때마다,(手足動く度に,) 動成駭觸,걸핏하면 해괴한 일만 저질렀으니,(ともすれば奇怪した仕事だけやらかしたから,)當其時,大悶無聊,그 당시에, 크게 답답해했었고,슬퍼하면서, (その頃に, 大きく息苦しがったし,悲しみながら,)未嘗不창然思茂林豊草之爲樂也. 이 곳의 무성한 숲속을 그리워하며 즐거움을 삼았던 것이다.(こちらの盛んな林の中をしのんで楽しさをしたのだ.) 今幸蒙恩, 지금은 임금의 은혜로,(今は賃金の恩恵で,)解綬南歸, 벼슬을 그만 두고 돌아 올 수 있었으니,(官職をやめて帰って来ることができたから,)軒曼之榮過耳, 정말 벼슬 따위와 같은 영화란 이미 지난일이었다, (本当に官職なんかのような映画と言う(のは)もう過去のことだった,)鳥音而日丘一壑새소리 들리는 언덕과 골짜기의(鳥の音聞こえる丘と谷間の) 樂意方深. 즐거움이 깊어 가는 이 때에.(楽しさが深くなるこの時に.) 是時, 而吾堂適成, 마침, 나의 집이 완성되었다.(たまたま,私の家が完成された.)將杜門却掃, 潛深伏奧 문을 닫고, 찾아오는이도 사양한채, (門を閉めて, チァッアオヌンイも遠慮したまま,)면仰乎一室之內,방안에 깊이 들어 박혀 지내며, (室內に深くかかってめりこんで過ごして,)放浪乎山谿之間, 산과 계곡을이리저리 거닐기도 하며,(山とギェゴックウルイリゾリぶらついたりして,) 圖書,足以供玩索之樂, 때론 서적들로 취미를 붙여, 그 의미를 궁구하기도 하고,(たまには書籍たちで趣味を付けて, その意味を窮究したり,) 疏려, 足以忘芻환之미 성긴 밥이나,맛있는 음식의 기름짐을 잊기에 족하니.(きめが粗いご飯や,おいしい食べ物の油っこさを忘れるのに充分なの.) 佳辰美景,좋은 때 아름다운 경치에, (良い時美しい景色に,)精朋偶集, 정겨운 벗들이 우연히모여들면, (情があふれた友たちがウヨンヒモヨドルなら,)則輿之,窮回溪,그들과 더불어,굽이진 계곡을 거닐기도 하며, (彼らといっしょに,かかとでは谷をぶらついたりして,)坐巖石, 바위에 앉아 (岩に座って)望靑天, 푸른하늘을 바라보며, (青空を眺めて,) 歌白雲,흰구름을 읊기도 하면서,(フィングルムを詠じたりしながら,)蕩押魚鳥, 물고기 새들과 함께 어울려 호탕히 지내노라면,(魚鳥たちと一緒に 似合ってホタングヒ過ごしていたら,)皆足以自樂而忘憂.이 모든 것이 마음을 즐겁게 하여 근심을 잊는다.(このすべてのものが心を楽しくして懸念を忘れる.) 嗚呼, 斯亦人生適意之大者, 아! 이것 또한“인생이 스스로의 뜻에 맞는 큰 것인 즉"(あ! これもまた“人生が自らの意味に当たる大きいことであるすなわち")外慕何爲, 밖으로 달리 그 무엇을 그리워할 것인가?(外で他にその何をしのぼうか?,)懼斯言之不固, 내 이 말을 굳게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한 나머지,(私のこの言葉をしっかり守ることができないか恐れたあげく,) 聊書壁而自警. 벽에다가 글로써 붙여 놓고 스스로 경계하고 삼가하고져 하노라. (壁に文として付けておいて自ら警戒して遠慮しようとする.)
丙戌季夏(병술계하) 丙戌年(1586) 늦 여름
主人 西厓居士記(주인 서애거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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