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애 선생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서애 선생과 관련된 자료들을 이것 저것 읽다가 ‘옥연서당기’의 세심재 부분에서 너무 큰 의문에 부딪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옥연정사 홈페이지를 보니 柳永一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洗心齋(세심재) 取易繫辭中語,(취역계사중어) 意或從事於斯,以庶幾萬一爾.(의혹종사어사이서기만일이) 세심재라 지었으니, 주역계사편중“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의 의문은 意或從事於斯,以庶幾萬一爾.라는 글 속에는 세심이라는 말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데 이것이 세심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락재는 取'自遠樂乎'之語. 自遠方來하니不亦樂乎 에서 따 왔다 하고 그런 의미의 글자가 인용한 문장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 계사편을 찾아 보았으나, 그곳에서는 意或從事於斯,以庶幾萬一爾라는 구절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계사편 제10장에는 聖人 以此洗心 退藏於密 ... 성인이 이로써 마음을 깨끗이 씻어 은밀함에 물러가 감추며....”라는 구절이 나옵니다(1998. 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하권 558p) 이 구절이 옥연정사를 지은 뜻과도 맞지 않을까요?
감히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본다면 혹시 원본을 옮기는 과정에서 잘못 인용한 것은 아닐런지요? 정말 서애 선생이 쓰신 원본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인지요? 원본을 볼 수 있으시다면 확인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최진명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하회마을동행안내"홈페이지 관리자 류영일 입니다,
서애선생13대 후손으로 무엇을 하는것이 보람되겠는가 생각다가 결정한것이 하회를 좀더 확실하게 여러분들께 알리는것이 내가할일이 아닌가하여 부족하지만 시작한지가 어언6년째가 되었습니다,관심갖어주셔서 깊은감사 들입니다,참고로 선생께서 직접쓰신 현판사진을 올리겠습니다.선생께서 45세때 쓰신것이라하니 지금부터 약423년전에 쓰신것이랍니다,

玉淵書堂記
余旣作遠志精舍, 나는 이미 원지정사를 지어 놓았으나,
猶恨其村墟近, 未燁幽期,마을이 멀지 않아, 그윽한 맛을 누리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渡北潭, 於石崖東, 이에 북쪽으로 沼를 건너, 돌벼랑 동쪽으로, 得異處焉,기이한 터를 잡았는데,
前읍湖光, 앞으로는 호수의풍광을 지녔고, 後負高阜, 뒤로는 높다란 언덕에 기대었으며,
丹壁峙其右, 오른쪽에는 붉은 벼랑이 치솟고, 白沙榮其左, 왼쪽으로는 흰모래가 띠를 두른듯 했다
南望,則群峯錯立 남쪽으로 바라보면, 뭇 봉우리들이 들쑥날쑥 섞여 서서,
拱읍如畵, 마치 두 손을 맞잡고, 읍하는 형상이한폭의 그림이요.
漁村數鮎, 어촌 두어 집이,隱映烟樹間. 나무숲 사이 강물에 어리어 아른 거린다.
花山自北而南, 화산은 북쪽에서 달려오다가 남쪽의.隔江相對, 강을 대하고 멈추어 섰다.
每月出東峯, 달이 동쪽의 산 봉우리에서 떠 오를 때,寒影倒垂,차가운 산그림자는,
半浸湖水, 반쯤 거꾸로 호수에 드리워지는데, 纖波不起, 물결 한점 일지않는 잔잔한 강물에,
金壁相涵, 금빛 달 그림자까지 담겨진듯한, 殊可玩也. 관경이야 말로 매우 볼만한 것이었다.
地去人烟, 不甚遠, 이 곳이 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나, 而前阻深潭, 앞에 깊은 沼가 있어,
人欲至者, 사람이 오고자 해도, 非舟莫通,배가 없으면 올 수가 없다.
舟艤北岸, 그래서 배를 북쪽 기슭에 메어 두면, 則客來坐沙中, 사람들이 와서 모래 사장에 앉아,
招呼無應者, 이쪽을 향해 소리쳐 부르다가 오래도록 대답이 없으면, 良久乃去, 스스로 돌아가곤 하였으니,
亦遁世幽루之一助也. 이 또한 세상을 피해 그윽히 들어앉아 사는 일에 한가지 도움이 된다.
於是, 余心樂之,나는 이것을, 마음 속으로 좋아하여, 欲作小宇,조그마한 집을 지어서,
爲靜居終老之所. 늙도록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願家貧無計, 살피건데 집이 가난하여 도무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有山僧誕弘者, 마침 산승탄홍이란 자가,
自薦幹其役,그 건축을 주관하고, 資以粟帛, 곡식과 베를내어 놓으니,
自丙子始, 越十年丙戌粗成, 일을 시작한 병자년(선조 9년 1576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병술년(선조 19년 1586년)에, 可루息. 겨우깃들고 쉴만하게 되었다.
其制, 爲堂者二間, 집 구조는 당2칸은 名曰瞰綠, 감록헌이라 부르고,
取王羲之'仰眺碧天際, 俯瞰綠水외'之語也.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 물구비 바라보네"
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고. 堂之東,爲燕居之室二間, 名曰洗心,이 당에 붙어 있는 편히 쉴 수 있는 방 2칸 이름을,
洗心齋라 지었으니, 取易繫辭中語, 주역계사편중 意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又齋在北者三間, 또 북쪽 집3칸은,以舍守僧, 取禪家說, 名曰玩寂, 이 집을 지키는 중을 위해,
선가의 말을 따서, 玩寂齋라 하였다.
東爲齋二間,동향집 2칸은,以待朋友之來訪者,名遠樂,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遠樂齋라 하였는데,
取'自遠樂乎'之語.이 명칭은 論語중의 이른바 먼 곳으로부터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이 自遠方來하니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아, 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다.
由齋西出爲小軒二間,이재의 서쪽으로낸 조그마한 마루 2칸은與洗心齋相比, 名曰愛吾
세심재와 이웃하고 있기에, 愛吾軒이라 하였다.取淵明'吾亦愛吾廬'之語
이 명칭은陶淵明의 시에 '吾亦愛吾廬' '나 또한 내 오두막 집을 사랑하노라'한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合而扁之,曰玉淵書堂 이 모두를 합하여 편액하기를, 玉淵書堂이라 하였다.
盖江水至此 匯爲深潭, 대개 강물이 흐르다가 이 곳에 이르러서는,
깊은 沼가 되었고,其色潔淨,그 물빛이 깨끗하고 맑아, 如玉故名.옥과 같은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
人苟體其意, 사람이 진실로 그 뜻을 본 받고자 한다면,則玉之潔, 淵之澄,옥의 깨끗함과, 沼의 맑음이란,
皆君子之所貴乎道者也. 이 모두가 군자가 귀하게 여길 道인 것이다.
余嘗觀古人之言曰내가 일찍이 옛 사람의 말을 살펴보건데,
"人生貴適意,"인생이란 스스로 뜻에 맞는 것이 귀한 것이지, 富貴何爲," 부귀가 무슨 귀한 것이 되리요 하였거니와,
余以鄙拙, 내가 옹졸하고 부족하여서,素無行世之願, 평소 행세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譬如미鹿之性, 사슴, 고라니 같은내 천성은,山野其適, 非城市間物,
산야에 삶이 알맞지,시정간에 살 사람이 아니었다. 而中年妄出宦途, 중년에 망령되게도벼슬길에 나가,
汨沒聲利地場, 二十餘年矣. 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마당에서 골몰하기를 20여년이 되었다.
擧足搖手,손발 움직일 때마다, 動成駭觸,걸핏하면 해괴한 일만 저질렀으니,
當其時,大悶無聊,그 당시에, 크게 답답해했었고,슬퍼하면서,
未嘗不창然思茂林豊草之爲樂也. 이 곳의 무성한 숲속을 그리워하며 즐거움을 삼았던 것이다.
今幸蒙恩, 지금은 임금의 은혜로,解綬南歸, 벼슬을 그만 두고 돌아 올 수 있었으니,
軒曼之榮過耳 정말 벼슬 따위와 같은 영화란 이미 지난일이었다,
鳥音而日丘一壑새소리 들리는 언덕과 골짜기의 樂意方深. 즐거움이 깊어 가는 이 때에.
是時, 而吾堂適成, 마침, 나의 집이 완성되었다.將杜門却掃, 潛深伏奧 문을 닫고, 찾아오는이도 사양한채,
면仰乎一室之內,방안에 깊이 들어 박혀 지내며,放浪乎山谿之間, 산과 계곡을이리저리 거닐기도 하며,
圖書,足以供玩索之樂, 때론 서적들로 취미를 붙여, 그 의미를 궁구하기도 하고,
疏려, 足以忘芻환之미 성긴 밥이나,맛있는 음식의 기름짐을 잊기에 족하니,
佳辰美景,좋은 때 아름다운 경치에,情朋偶集, 정겨운 벗들이 우연히모여들면,
則輿之,窮回溪,그들과 더불어,굽이진 계곡을 거닐기도 하며,坐巖石, 바위에 앉아 望靑天, 푸른하늘을 바라보며
歌白雲,흰구름을 읊기도 하면서,蕩押魚鳥, 물고기 새들과 함께 어울려 호탕히 지내노라면,
皆足以自樂而忘憂.이 모든 것이마음을 즐겁게 하여 근심을 잊는다.
嗚呼, 斯亦人生適意之大者, 아! 이것 또한“인생이 스스로의 뜻에 맞는 큰 것인 즉
外慕何爲, 밖으로 달리 그 무엇을 그리워할 것인가
懼斯言之不固, 내 이 말을 굳게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한 나머지,
聊書壁而自警. 벽에다가 글로써 붙여 놓고 스스로 경계하고 삼가하고져 하노라.
丙戌季夏(병술계하) 丙戌年(1586) 늦 여름
主人 西厓居士記(주인 서애거사 적다)
甲申年 2004. 3월 7일
河庭齋에서 십삼대손 柳 永 一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