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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산 축서사 방문기 2009-07-01 17:29:07  
  이름 : 하회촌지킴이      조회 : 3415      

2009년6월30일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1리 1번지에있는 문수산 축서사를 다녀왔습니다.

한반도의 남북으로 뻗은 태백산맥(太白山脈)이 굽이쳐 내려오다가 경북(慶北) 봉화군(奉化郡) 물야면(物野面) 개단리(皆丹里) 1번지 문수산(文殊山) 기슭 해발 800m 고지의 명당에 자리잡은 축서사는 동에는 화산(花山)이 있고, 서에는 저 멀리 명산 소백산(小白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으며, 남에는 청량산(淸凉山)이 우뚝하게 서있고, 안산으로는 학가산(鶴駕山)이 훤칠하게 솟아있다.

해발 1,206m의 산자수명한 문수산은 한때는 수 많은 사찰과 전설이 풍성한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우람했던 가람은 볼 수 없고 여기저기 골짜기마다 불적만 남아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축서사란 이름은 독수리 축(鷲), 깃들 서(捿), 즉 독수리 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님을 뜻하므로 축서사란 이름을 붙인 듯하다. 한편 험준한 뒷산세가 풍수지리학상으로 독수리가 날려는 형국이므로 축서사라 명명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축서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축서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축서사는 신라(新羅) 제30대 문무왕(文武王) 13년(서기 673년)에 의상(義湘)조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연기설화에 의하면, 문수산 아래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스님이 어느날 밤 지금의 개단초등학교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광채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 동자는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문수산 쪽으로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고 한다.

훗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 다니다가 현 보광전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시니 축서사의 창건이다. 산 이름도 문수보살이 출현하였다고 해서 문수산이라 한 듯하다.

의상대사께서는 3년 뒤에 축서사에서 40여리 떨어진 봉황산 중턱에 대찰을 세웠으니 동국화엄제일도량(東國華嚴第一道倆)인 부석사(浮石寺)이다. 흔히 축서사를 부석사의 큰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보광전 상량문에 의하면 이 절은 광서(光緖) 7년(서기 1875년)에만 해도 대웅전(大雄殿), 보광전(普光殿), 약사전(藥師殿), 선승당(禪僧唐), 동별당(東別堂), 서별당(西別堂), 청련당(靑蓮堂),백화당,(白花堂), 범종각(梵種閣)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다.

 

산내 암자도 상대(上臺), 도솔암(도率庵), 천수암(天水庵) 등 세 개나 되었다. 당시 대중이 44명이나 되었다.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 하여 기도처로서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말기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 서기 1905년)과 정미(丁未)7조약 (서기 1907년)으로 왜구의 속국화되는 것을 분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무장 봉기하여 항일 투쟁할 때, 이곳에도 일군이 의병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으로 방화하여 대웅전 1동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이때 천년의 고찰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축서사는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었고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던 수 많은 유물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한동안 폐사로 있다가 일제 말기에 삼성각을 신축하고 요사 2동을 1957년과 1982년에 각각 신축하여 사찰의 면모를 겨우 유지하였다

 

 

현 주지 윤무여(尹無如) 스님이 1987년 3월에 부임하여, 1994년에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1995년 5월에 토목설계(서울 무오설계)와 건축설계(대구 정우건축)을 완료하고, 1996년 4월1일부터 토목공사 및 석축공사를 시작하였다. 1997년에 후원채 (72평, 목조토와)를 완공하였다. 1998년 3월 기존의 요사( 64.2m²), 요사 및 고방( 48.32m²), 욕실채( 37.8m²), 나뭇간(32.8m²), 변소( 18.04m²)를 철거하고, 대웅전을 신축하기 위하여 정지작업 및 축대작업을 하였다.

1999년 10월10일 대웅전을 완공하고, 석가모니 불상과 문수보살상과 관세음보살상을 좌우에 모셨다. 1999년 8월에 적묵당(寂默堂)을 상량하였다.

 

보물로는 대웅전 불상 및 광배, 좌대, 괘불이 있으며 지방문화재자료로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보탑성전(寶塔聖殿)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층 사리탑과 주차장 사이 계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탑성전은 진신사리탑을 향한

 어간 쪽 벽을 대형 유리로 만들어 사리탑을 향해 기도 할수있도록 하였다,

높은 돌기둥 위에 누각 형식으로 만든 이 전각은 공중에 떠 있는 하늘의 궁전 같기도 하다,

보탑성전 안에는 불상이 없다,

바로 앞에 부처님의 진신(眞身),사리(舍利)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 보탑성전은 200명이 참배할수있는 큰 규모로 만들어서 불자들이 대웅전과 사리탑을 향해 기도할수있다.

뒤에서 바라본 보탑성전

주련

 마하대법왕 (摩하大法王) 위대하고 크신 부처님 께서는,

무단역무장(無短亦无長)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으며,

본래비흑백(本來非黑白)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지만,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곳에따라 푸르고 누른빛을 띠시네.

 사리보탑

국내 최대 규모인 이 탑은 진신사리 112과를 모신 5층 석탑으로 기단 넓이는 7.3m정도,총 높이는 15.5m이다,

각 층마다 한옥 모양의 조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지붕은 기와 용마루,벽에는 기둥,포,상하방 등이 부조되고

각 층마다 부처님을 조각하여 53분이 조성되어 있다.

 심검당(尋劍堂)

 

사리탑 왼편에 있는  정면7칸 측면 3칸의 우람한 이 전각은 축서사의 종무(宗務)를 수행하는 종무소와

소임자들의 거처로 사용되고있다,

 

주련

 

 설산설유천만사(雪山說有千萬事) 설산서 설한 말 가운데 천만가지 일 다 있고,

해천광망본무언(海天廣茫本無言) 바다와 하늘 아득히 넓어도 본래 말이 없네,

황앵상수천리목(黃鶯上樹千里目)나무 위에 노란 꾀꼬리는 천리를 보고,

학입전지심풍부(鶴入田地心豊富) 전답으로 들어가는 학의 마음은 풍요롭네,

색구유색환비실(色求有色還非實) 색을 구해 색이 있어도 본래 실체가 없는것,

심도무심시내명(心到無心始乃明) 마음은 무심에 도달해야 비로서 밝아지니,

행리정수방장입(行李整收方丈入) 행장을 정리하여 방장을 찿아오라,

천운산진일륜청(天雲散盡日輪晴)하늘의 구름 다 사라지고 해는 밝으리라.

 

 사리탑 뒤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웅전은 순백의 대리석 기단 위에 조성되어있다,

현주지 무여(無如)대선사(大禪師)의 공덕으로 1999년 10월에 창건되어 그 안에 석가모니 본존불상을 모시고

문수보살상과 관세음 보살상을 좌우 협시로 모셨다.

 

 

주련

 

 만대윤왕삼계중(萬代輪王三界主) 만대의 윤왕이시고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邊十方中) 부처님은 몸소 온 세상에 고루 나타나셔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넓고 크신 서원 항상 그치지 않으시니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 삼세의 여래께서 모두가 다 같으시네,

쌍림시멸기천추(雙林示滅氣千秋) 쌍림에서 열반을 보이시고 몇 세월이 흘렀던고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渺難窮) 바다같이 넓은 깨달음 묘해서 다 알기 어렵네.

 

禪悅堂(선열당 )

 

사리탑 오른쪽에 자리잡은 정면7칸 측면3칸의 이 웅대한 건물은 스님과 행자님들의 거처로 사용되는

수행의 중심도량이며, 큰방은 24시간 항상 정진할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으며 재가 불자들의 참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리탑을 중심으로 심검당과 대를 이루어 좌청룡 우백호처럼 선열당 건물은 사찰전체의 구도상 안정과 평화를 주어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하고 이성을 서릿발처럼 맑게 해준다.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하였다,

문자에 의지한 독경(讀經)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길은 참선(參禪)으로 돈오(頓悟)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련

南坡猶自草靑靑(남파유자초청청) 남쪽 언덕엔 아직도 풀이 푸른데,

一葉井梧秋信早(일엽정오추신조) 우물가 오동잎 떨어져 가을임을 알리네,

雁拖秋色過衡陽(안타추색과형양) 기러기는 가을을 몰고 형양을 지나니,

無假轉頭關外路(무가전두관외로) 한가로이 머리 들어 밖에 길 볼 여가 없네,

白日靑天雷影忙(백일청천雷影忙) 밝은날 푸른 하늘에는 천동의로 바쁜데,

南山石虎吐寒霞(남산석호토한하) 남산의 들 호랑이 찬 안개를 토하고,

北海泥牛湧碧波(북해니우용벽파) 북해의 진흙 소 푸른 파도에서 솟는데,

最後別調誰善應(최후별조수선응) 최후의 특별한 곡조에 누가능히 화답하랴.

 

 

석등(石燈)

경북문화재자료 158호

화사석(火舍石)에 균열이 있고 간주(竿柱)가 약간 잘려진 것 외에는 각부가 완전하여,

방형(方形)의 지대(支臺)위에 하대를 놓았는데,측면에 2구씩의 안상(眼象)이 있고,

8각 복련석(伏蓮石)을 놓아 전형적인 신라 석등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광전(普光殿)

대웅전 오른펀,조금 더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보광전은 축서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조선중기에 건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각은,신라 문무왕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광배의석조 비로자나불좌상(보물995호)을 모시고 있는 축서사의 중요한 전각의 하나이다.

 

옛날에 대가람 축서사는 일제(日帝)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본거지 역활을 하였으므로

일제가 고의로 절을 불태웠는데 그때 유일하게 타지않고 남아있는 전각이라 한다,

 

새로지은 않은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옛 모습을 지키는 보광전 때문에 축서사의 긴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져 오고있다.

 

주련

報化非眞了妄緣(보화비진료망연) 보신 화신 참이 아니고 망연으로 인함이요,

法身淸淨廣無邊(법신청정광무변) 청정한 법신은 가없이 넓고 넓네,

千江有水千江月(천강유수천강월) 천 강에 물이 있다면 거기 달 그림자도 천개,

萬里無雲萬里天(만리무운만리천) 만리에 구름 없다면 만 리 하늘은 하나.

 응향각(凝香閣)

 

365일 언제나 문을 열고 제방의 수좌들과 제가 불자들을 맞이하고 계시는 무여(無如)대선사께서

주석하시는 곳이며 정면3칸,측면3칸인  팔작지붕의 아담한 당우이다.

선사는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신 한국 굴지의 대선사(大禪師)이다.

 

一念忘時明了了(일념망시명요료) 한 생각 잊을 때 분명하고 또렸하니,

彌陀不在別家鄕(미타부재별가향) 아미타는 분명 딴 동래에 계시는것 아니네,

通身坐臥蓮華國(통신좌와연화국) 온 몸 그대로 연화국에 눕고 앉으니,

處處無非極樂堂(처처무비극락당) 곳곳이 곧 극락당 아닌곳이 없어라.

 

 

축서사를 찾는 참배객에게 반야수를 주시는 관세음 보살님

 

불육욕천(佛六慾天)의 둘째 하늘인 도리천에 있는 달콤하고 신령스런 물을 반야수라 한다,

이 물은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살아있는 사람은 오래 살수있고,

죽은이는 부활한다고 한다,이 때문에 반야수는 불사주(不死酒)라고도 일컬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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