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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과 옥연서당 2014-09-18 23:36:30  
  이름 : 하회촌지킴이      조회 : 2115      

대한민국해군 이지스함 나라를 지키는힘 서애 류성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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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이 쓰여진곳 옥연서당 입니다,






서애선생께서는 57세때 봉고파직이되어 고향인 하회로 낙향하셨고,이곳 옥연서당에서 임진왜란7년여전쟁을 회고 반성한






기록이 후대에 이르러서 국보132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징비록(懲毖錄)은 선생의 대표적 저술이며 국난극복의 바이블이라 합니다,그 이름은 <시경>(詩經)중의 문구인 <징전비후>(懲前毖後)에서 따왔다 합니다,<징전비후>는 <과거 잘못을 반성하여 미래에 대비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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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懲毖錄):국보132호 서애선생 자필입니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소용이 있을까만은 다만 뒷날에 경계로 삼아야 하겠기에 자세하게 적어두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징비록>의 내용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조국의 산하를 피로 물들인 임진왜란에 관한 회고록 입니다,임란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관찬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신록>그리고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이로李魯)의 <용사일기>(龍蛇日記)등이 있지만 임란의 전체국면을 궤뚫어 볼수있는 사료로서 <징비록>보다 뛰어난것은 없다고 합니다.








선조대왕 친필 밀부유서(宣祖大王親筆密부諭書):보물120호)






 






임금 선조가 1596년 2월에 도체찰사(都體察使)겸 영의정 서애(西厓)에게 전략상의 기밀을 왕자신과 서애 둘 사이만 알고 처결하자는 뜻을 친필로 쓰고 두 분 사이에만 사용하는 어보(御寶)를 찍어 보낸 유서(諭書)입니다,






그는 7년전쟁 발발 다음해인 1593년 10월부터 종전 무렵인 1598년 11월까지 영의정으로 복무했습니다,그러니까 군정의 최고지도부에서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징비록>은 그만큼 신뢰도가 높습니다,








서애는 임란 초전에 궤멸적 타격을 입은 관군을 재건하고 의병을 활용하여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 무렵 그는 명나라의 국책에 순응하여 일본과 강화하려 했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을 당했습니다,57세에 낙향하여 66세가되던 1607년까지 9년간 저술과 후학양성에 몰두하다 삶을 마감했습니다,특히 그는 자신의 스승인 이황의 행장(行狀)을 기록한 <퇴계선생연보>와 풍산류씨(豊山柳氏)의 가계보인 <종천영모록>(終天永募錄) 그리고 국보 제132호 <징비록>을 저술함으로써 역사가 로서의 이름도 남겼습니다,만년에 그가 실각을 당해 낙향한 것이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드높이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징비록>은 나라에 힘이없고 국방을 소흘히 하면 외적이 침략한다는 교훈과 비록 외침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겨레가 합심하면 능히 물리칠 수 있다는 신념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옥연서당기(玉淵書堂記)










玉淵書堂記



余旣作遠志精舍, (여기작원지정사)나는 이미 원지정사를 지어 놓았으나,





 


猶恨其村墟近, 未燁幽期,(유한기촌허근 미협유기)마을이 멀지 않아, 그윽한 맛을 누리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渡北潭, 於石崖東, (도북담 어석애동)이에 북쪽으로 沼를 건너, 돌벼랑 동쪽으로,






 


 得異處焉,(득이처언)기이한 터를 잡았는데,






 


前읍湖光, (전읍호광)앞으로는 호수의풍광을 지녔고,






 


 後負高阜,(후부고부) 뒤로는 높다란 언덕에 기대었으며,


 






丹壁峙其右,(담벽치기우) 오른쪽에는 붉은 벼랑이 치솟고,


 






白沙榮其左,(백사연기좌) 왼쪽으로는 흰모래가 띠를 두른듯 했다




 



南望,(남망)남쪽으로 바라보면, 則群峯錯立,(칙군봉착립) 뭇 봉우리들이 들쑥날쑥 섞여 서서,




拱읍如畵,(공읍여화) 마치 두 손을 맞잡고 읍을하는 형상은 한폭의 그림이요.




漁村數鮎,(어촌수점) 어촌 두어 집이,隱映烟樹間.(은영연수간) 나무숲 사이 강물에 어리어 아른 거린다.




花山自北而南, (화산자북이남)화산은 북쪽에서 달려오다가 남쪽의.




隔江相對,(격강상대) 강을 대하고 멈추어 섰다.




每月出東峯, (매월출동봉)달이 동쪽의 산 봉우리에서 떠 오를 때,




寒影倒垂,(항영도수)차가운 산그림자는,




半浸湖水,(반침호수) 반쯤 강물위에 거꾸로 드리워지는데,




纖波不起, (섬파불기)물결 한점 일지않는 잔잔한 강물에,




金壁相涵, (금벽상합)금빛 달 그림자까지 담겨진듯한,




殊可玩也. (수가완야)관경이야 말로 매우 볼만한 것이었다.




地去人烟, 不甚遠, 지거인연불심원이 곳이 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나,
 



而前阻深潭, (이전조심담)앞에 깊은 (沼)쏘가 있어,




人欲至者, (인욕지자)사람이 오고자 해도, 非舟莫通,(비주막통)배가 없으면 올 수가 없다.




舟艤北岸, (주의북안)그래서 배를 북쪽 기슭에 메어 두면,




則客來坐沙中,(칙객내좌사중) 사람들이 와서 모래 사장에 앉아,




 招呼無應者,(초호무응자) 이쪽을 향해 소리쳐 부르다가 오래도록 대답이 없으면,




 良久乃去, (양구내거)스스로 돌아가곤 하였으니,




 亦遁世幽棲之一助也.(역둔세유서지일조야) 이 또한 세상을 피해 그윽히 들어앉아 사는 일에




한가지 도움이 된다.




於是, 余心樂之,(어시,여심락지)나는 이것을, 마음 속으로 좋아하여,
 



欲作小宇,(욕작소우)조그마한 집을 지어서,




爲靜居終老之所.(위정거종로지소) 늙도록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願家貧無計, (원가빈무계)살피건데 집이 가난하여 도무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有山僧誕弘者, (유산승탄홍자)마침 산승탄홍이란 자가,




 自薦幹其役,(자천간기역)그 건축을 주관하고, 資以粟帛, (자이속백)곡식과 베를내어 놓으니,




自丙子始, 越十年丙戌粗成, (자병자시,월십년병술조성)일을 시작한 병자년(선조 9 1576)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병술년(선조 19 1586), 可棲息.(가서식) 겨우깃들고 쉴만하게 되었다.




其制, 爲堂者二間, (기제,위당자이간)집 구조는 당2칸은 名曰瞰綠, 감록헌이라 부르고,




 取王羲之'仰眺碧天際, 俯瞰綠水외'之語也.(취황의지'앙조벽천제,부감록수외'지어야,)




황의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 물구비 바라보네" 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고.




 



 堂之東,爲燕居之室二間,(당지동,위연거지실이간)이 당에 붙어 있는 편히 쉴 수 있는 방 2칸 이름을,




名曰洗心(명왈세심)洗心齋라 지었으니,




 



取易繫辭中語, (취역계사중어)주역계사편중 




 意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의혹종사어사,이서기만일이)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又齋在北者三間,(우재재북자삼간)또 북쪽 집3칸은,




 



以舍守僧, 取禪家說, 名曰玩寂,(이사수승) 이 집을 지키는 중을 위해,




取禪家說, 名曰玩寂(취선가설,명왈완적)선가의 말을 따서, 완적재라 하였다.




東爲齋二間,(동위재이간)동향집 2칸은,




 



以待朋友之來訪者,名遠樂,(이대붕우지래방자,명원락)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라 하였는데,




'自遠樂乎'之語.(취'자원락호'지어)이 명칭은 論語중에서 따온것이다.




由齋西出爲小軒二間,(유재서출위소헌이간)이재의 서쪽으로낸 조그마한 마루 2칸은




 



與洗心齋相比, 名曰愛吾(여세심재상비,명왈애오)세심재와 이웃하고 있기에, 愛吾軒이라 하였다. 




取淵明'吾亦愛吾廬'之語(취연명'오역애오려'지어)




이 명칭은 도연명(陶淵明)의시<讀山海經>에서 뭇새들도 깃들둥지를 찾아 기뻐하듯이,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는 시어에서 따온것이다,




 



合而扁之,曰玉淵書堂(합이편지,왈옥연서당) 이 모두를 합하여 편액하기를, 玉淵書堂이라 하였다.




盖江水至此 匯爲深潭,(합강수지차 회위심담) 대개 강물이 흐르다가 이 곳에 이르러서는,깊은 沼가 되었고,




 



其色潔淨,(기색결정)그 물빛이 깨끗하고 맑아, 如玉故名.(여옥고명)옥과 같은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




人苟體其意,(인구체기의) 사람이 진실로 그 뜻을 본 받고자 한다면,




 



則玉之潔, 淵之澄,(칙옥지결,연지증)옥의 깨끗함과, 沼의 맑음이란,




皆君子之所貴乎道者也.(개군자지소귀호도자야) 이 모두가 군자가 귀하게 여길 道인 것이다.




余嘗觀古人之言曰(여상관고인지언왈)내가 일찍이 옛 사람의 말을 살펴보건데,




"人生貴適意,"("인생귀적의")인생이란 스스로 뜻에 맞는 것이 귀한 것이지,




 



"富貴何爲,"("부귀하위") 부귀가 무슨 귀한 것이 되리요 하였거니와,




余以鄙拙,(여이비졸) 내가 옹졸하고 부족하여서,




 



素無行世之願,(소무행세지원) 평소 행세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譬如미鹿之性, (비여미록지성)사슴, 고라니 같은내 천성은,




 



山野其適, 非城市間物, (산야기적,비성시간물)산야에 삶이 알맞지,시정간에 살 사람이 아니었다. 




 



而中年妄出宦途, (이중년망출이도)중년에 망령되게도벼슬길에 나가,




汨沒聲利地場, 二十餘年矣. (골몰성리지장,이십여년의)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마당에서




 



골몰하기를 20여년이 되었다.




擧足搖手,(거족요수)손발 움직일 때마다,




 



動成駭觸,(동성해촉)걸핏하면 해괴한 일만 저질렀으니,




當其時,大悶無聊,(당기시,대민무료)그 당시에, 크게 답답해했었고,슬퍼하면서,




未嘗不창然思茂林豊草之爲樂也. (미상불창연사무림풍초지위락야)이 곳의 무성한 숲속을 그리워하며




 즐거움을 삼았던 것이다.




今幸蒙恩,(금행몽은) 지금은 임금의 은혜로,解綬南歸,(해수남귀)벼슬을 그만 두고 돌아 올 수 있었으니,




軒曼之榮過耳 (헌만지영과이)정말 벼슬 따위와 같은 영화란 이미 지난일이었다,




鳥音而日丘一壑(조음이일구일학)새소리 들리는 언덕과 골짜기의



 



樂意方深.(락의방심) 즐거움이 깊어 가는 이 때에.




是時, 而吾堂適成,(시시,이오당적성) 마침, 나의 집이 완성되었다.



 



將杜門却掃, 潛深伏奧(장두문각소,잠심복오) 문을 닫고, 찾아오는이도 사양한채,




면仰乎一室之內,(면앙호일실지내)방안에 깊이 들어 박혀 지내며,



 



 



放浪乎山谿之間,(방랑호산계 지간) 산과 계곡을이리저리 거닐기도 하며,




 圖書,足以供玩索之樂,(도서족이공완삭지락) 때론 서적들로 취미를 붙여, 그 의미를 궁구하기도 하고,




疏려, 足以忘芻환之미(소려,족이망추환지미) 성긴 밥이나,맛있는 음식의 기름짐을 잊기에 족하니,




 佳辰美景,(가진미경)좋은 때 아름다운 경치에,情朋偶集,(정붕우집) 정겨운 벗들이 우연히모여들면,




則輿之,窮回溪,(칙여지궁회계)그들과 더불어,굽이진 계곡을 거닐기도 하며,



 



 



坐巖石, (좌암석)바위에 앉아 望靑天,(망청천) 푸른하늘을 바라보며




歌白雲,(가백운)흰구름을 읊기도 하면서,



 



蕩押魚鳥, (탕압어조)물고기 새들과 함께 어울려 호탕히 지내노라면,




皆足以自樂而忘憂.(개족이자락이망우)이 모든 것이마음을 즐겁게 하여 근심을 잊는다.




嗚呼, 斯亦人生適意之大者,(오호,사역인생적의지대자) ! 이것 또한“인생이 스스로의 뜻에 맞는 큰 것인 즉




外慕何爲,(외모하위) 밖으로 달리 그 무엇을 그리워할 것인가




懼斯言之不固,(구사언지불고) 내 이 말을 굳게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한 나머지,




聊書壁而自警.(요서벽이자경) 벽에다가 글로써 붙여 놓고 스스로 경계하고 삼가하고져 하노라.




丙戌季夏(병술계하) 丙戌年(1586) 늦 여름




主人 西厓居士記(주인 서애거사 적다)





 



甲申年  2004. 3 7




庭齋에서 십삼대손  柳 永 一  번역
































옥연서당에서 일반인들 대상으로 옥연서당기를 해설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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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해군 서애 류성룡함 1부대1촌협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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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선생 께서는살아 생전에 이곳에서 후학과 동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식견이 부족하면 큰일을 하지못할것이며, 재주가 골고루 미치지못하고 한정되어 있으면
사리에 통달하여 활용할줄아는 학자가 될수없다"고 말씀하셨고,

"책이나 읽으며 글자 풀이나 한다고 해서는 선비라 할수없고,최소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하게 해줄 치국안민 능력이 있어야하고,오랑캐를 물리치고 재용을 넉넉히하며 문무를 겸해야만 참된 선비라 할수있다" 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학문에 익숙하지 못한 덜된선비,부폐한선비,더러운선비,험이 많은선비,도둑질을 일삼는선비,돈이나 밝히는 천한선비,적은것에 탐을내는 속된선비,매사에 트집이나 잡고 남의 험담이나 일삼는 쓸데없는선비,등을 세상에서 없어져야할 못된이름의 선비라며 삼가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천문,지리,수학,의술,병법,등에도 해박한 지식을 겸비 하셨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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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이지스함 DDG993 서애류성룡함1부대1촌 협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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