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ID / 비밀번호 찾기
HOME | 공지사항 | 로그인 | 회원가입
          사진첩 현재위치 : HOME > 사진첩 > 사진첩
   병산서원 2009-11-04 18:00:08  
  이름 : 하회촌지킴이      조회 : 3240      

 

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에 있는 서원으로1978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민속마을로 지정된 풍산(豊山) 류씨(柳氏) 집성촌인 하회마을과는 
화산(花山)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병산서원은 산의 동쪽에 있고,하회마을은 그 반대쪽에 있다.
낙동강 물줄기가 흘러 내려오다가 화산 을 만나 센 물살을 만들며 
물항아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남쪽으로 흘러 나가는 
강가 언덕에 있다.

만대루의 '만대(晩對)'는중국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에 나오는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에서 따온 것이나,

 

혹자는 " 병풍같은 푸른 산기운에 취해 늦도록 편안하게 마주 대할만 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누각의 이름을 시에서 빌려 왔듯이 만대루가 얽어내는 공간은

 

가히 시적이다. 이곳에 서면 한쪽으로는 병산과 낙동강을 낀 자연이 펼쳐지는

 

경관을 읽을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원 일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원의 자리로 번잡한 거리의 우마(牛馬) 소리를 멀리해 뛰어난 경치를 지닌 곳을

 

택하는 까닭은, 영기(靈氣)를 지니고 있는 곳이어야 걸출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만대루 누마루에 서면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 만대루는 유생들이 휴식도 하고, 풍광을 보며 시회(時會)를 가졌던 곳이다.

 

백제성루(白帝城樓)    두보(杜甫)

강도한산각(江度寒山閣)   강은 차가운산 전각을 지나고,

성고절새루(城高絶塞樓)   성은 아득한 변방 누각에 높다,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푸른절벽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녁이 마주할만하고,

백곡회심유(白谷會深遊)   흰바위 골짜기는 여럿모여 즐기기 좋구나,

급급능명안(急急能鳴雁)   울줄아는 기러기는 빠르디 빠르고,

경경불하구(輕輕不下鷗)   내려오지 않는 갈매기는 가볍디 가볍다,

이릉춘색기(夷陵春色起)   이릉에 봄빛이 일어나니,

점의방편주(漸擬放扁舟)   점점점 작은배를 띄워볼까하네.

  복례문은 서원의 정문입니다,  

'복례(復禮)'는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에서

 따온 말이다. "자기를 누르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라는 이 뜻은, 

곧 세속적인 자신의 마음과 자세를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뜻을 갖고 있다.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있던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을 모체로 하여 건립되었다.
서당은  본래 풍산읍에 있었는데,1572년(선조5)에 서애(西厓)류성룡(柳成龍,1542-1607)이
서당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병산서당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그후 임진왜란때 소실된것을 1613년(광해군5)에 서애의 제자인 
우복(愚伏)정경세(鄭經世,1563-1633)등 지방유림이 서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위해 존덕사(尊德祠)를 건립하면서 향사의 기능을 
갖춘 서원이 되었다.그후 1662년 수암(修巖)류진(柳袗,1582-1635)이
추가 배향되었으며,1863년(철종14)에 '병산(屛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서원은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 27개중 하나이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에게 성리학을 배운 선조때의 문신으로,
정언(正言),대사간(大司諫),대사헌(大司憲),대사성(大司成,도승지,
경상도 관찰사,대제학(大提學),병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 등을
역임했다.임진왜란때는 선조를 호종(扈從)하며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특히 이순신,권율 등을 등용하여 임진왜란을
역전시키는데큰 공을 세웠다.서애는 1598년(선조31)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하회에서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며 
[징비록(懲毖錄)]등을 집필했다.

본래 풍산에 있던 풍악서당을 선조5년에 이곳병산으로 옴겨놓고 병산서당이라고 부르다가

서애선생 사후에 우복 정경세 공께서 지역유림들의 도움을 받아서 존덕사를 지은후

선조임금께서 임진왜란을 반란극복하여 나라를 다시구한 공이있다하여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록 국천으로 하사하여 선생의 위폐를 모신다음 비로서

병산서원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현판3개를 한눈에 볼수있습니다,

건축사 1000명에게 물었습니다,현존하는 고 건축물중에 가장아름다운 건축물로

만대루가 가장많은분들이 뽑았다고 합니다.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에 월만대(月滿臺)라

사시(四時) 가흥(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 어늬 그지 있으랴

 

 도산십이곡 6수(전6곡중 6수)

봄바람에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樓閣)에 가득히 비쳤으니

춘하추동 사 계절이 각기 지닌 멋은

사람의 흥겨워함과도 다를봐가 없구나!그러니 더군다나,

고기가 물에서 뛰놀고 소리개는 높이 날며,

흘러가는 구름은 그림자를 던지고,

밝은 햇빛이 온 누리를 비추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을 수 있겠느냐?

존덕사

서원 내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서애 류성룡 선생과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

공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1610(광해군2)년 우복 정경세공을 비롯한 사림들이

이서당안에 존덕사 를세우고 1614(광해군6)년 선생의 도학과 훈업을 흠모한 나머지 

선생의 위판를 봉안함으로서 ,비로서  향사기능을 갖춘 서원 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1662(현종3)년 사림에서 세째아들 수암 류진 공을추가로 종향하였습니다.

서애는 1598년(선조31)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하회에서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며

징비록등을 집필하였습니다,<징비록>은 우리역사상 가장 위급했든 국난을 이겨낸

구국의 내용을 기록한것으로,다시는 이나라에 이러한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않되겠다는 생각에서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썼다고 합니다.

서애는 1598(선조31)년 임진왜란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해7월 정웅태 무주사건 에대한

 

진주사를 노모가 90세라 먼길은 갈수없다고 고사했고 왜(일본)와 화의를 주선했다하여

 

10월19일 북인 문홍도에의한 탄핵으로 영의정을 파면당했으며

 

그해12월5일 모든관작을 삭탈당하였습니다. 1599(선조32)년 2월16일 하회로 돌아와서

 

옥연서당에서 거쳐하셨습니다. 1600(선조33)년 11월 59세때 직첩을 되돌려 받았으나

 

이후 출사하지 않으셨습니다. 1602년(선조35)4월 61세때 청백리로 뽑혀 염근청백록에

 

기록되었으며 영모록을 지었으며 1604년(선조37)7월 징비록(국보132호) 집필을

 

 마쳤습니다.다시 부원군이되고 호성공신 호를 하사받았으며1605(선조38)년

 

을사년9월에 학가산 기슭 서미동 으로 이사하여 중대사 노승의 도움을받아

 

1606년(선조39) 3월에 초가를짓고 농환재라 명명하시고 그곳에서

 

1607년(선조40)5월6일 66세에 이르러 별세하셨습니다. 풍산읍 수동 남향 한 땅에

 

 예장 하였습니다. 1614년(광해군6) 위판이 봉안되었고

 

1627년(인조5) 문충(文忠)에시효가 하사되었습니다.

 

 

이 유서깊은 서원에 근래에들어서 세계적인 명사들이 줄을이어 방문을 하고가셨습니다.

 

 

2005년11월13일 부시 전 미국대통령 내외분께서 풍산고등학교를 방문하시고

 "대통령 재직시 류진 재단 이사장 가문과의 맺은 각별한 인연의로 지방 명문 사학인 이곳을 찾게된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히고 "대통령 직에는 누구도 오를수 있는만큼 학생들도 한나라의 국민으로서

 봉사할일을 찾아가며 큰 인물이 되려는 원대한 꿈을 가져달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이어진 학생들과의 대담에서 "한 국가의 대통령은 청렴함과 애국심이 기본 덕목이며 

나는 부모님과 가족들로부터 이같은 정신을 배웠다"고 덧붙혔습니다.

곧바로 병산서원을 방문하시고 6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뿌리깊은 학교는 지구상에서 유일하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세계에서도 그 유래가없는 남편과 아들을 대통령으로 탄생시키신 바바라 부시 여사역시 

서원의 풍광에 너무 감탄하셨습니다.

 

류영하 서애선생14대 종손으로부터 설명을 들으시고,,

 

기념으로 싸인을 남기시고,,

 

부시 전 미국대통령 친필싸인입니다.

 

환영나온 풍산류씨 문중대표들과 기념촬영,,

 

풍산금속 튜진회장 자택에서 오찬을 드시고 마당에선 탈춤공연도 있었습니다.

 

 

2009년8월3일에는 그아들이기도한 조지워커 부시 전 미국43대 대통령께서도 다녀가셨답니다.

 

 

류진 풍산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이화여대 총장께 설명도 듣고,,

기념으로 싸인을,,,

환영나온 풍산류씨 문중대표들과 기념촬영,

여러분 반갑습니다,참,좋습니다,,

관광객들과도 기념으로,,

 

 

 


부용대에 오르고보니,,
원지정사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용안내관리자에게
Copyright ⓒ 2010 by 하회마을 동행안내 All rights reserved.
상호 : 하회마을쉼터 / 대표 : 유영일 / 하회문화권역 회원제 유료 동행안내,사군자 체험,부채 족자판매
사업자등록 : 314-01-50731 / 통신판매신고 : 제 2009-5070129-30-2-00076호 / 간이과세자
주소 : (760-812)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276-4번지 상가8동 / 전화 : 010-8588-9925 054-841-9925 /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유영일